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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읽는다] 냉정하게 진단하고 우아하게 결핍시킨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12/22
첨부 조회 4748

냉정하게 진단하고 우아하게 결핍시킨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 외, 『전문가들의 사회』 (원제: Disabling Professions)
신수열 옮김, 사월의책, 2015

 

/김동우(충북NGO센터 간사)

 

* 본 서평은 필자의 블로그 '하릴없이 읽는다'에 게시한 원고를 일부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재판에 연루되면 법률 사무소를 찾는다. 그곳엔 오랫동안 쌓은 전문 지식과 숙련된 기술로 무장한 의사와 변호사가 믿음직한 인상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그들은 우리가 처한 질병/상황이 꽤 복잡하고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장기적이고 수준 높은(그리고 고비용의) 치료/소송에 대비하라고 조언한다. 환자/의뢰인은 그저 돈과 시간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에게 맡길 차례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지만 너무나 어려운 의학/법률 용어와 지식 체계와 복잡한 사회 구조는 문제를 스스로 이해하거나 해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정도이기 때문이다. 오직 전문가의 지식과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뿐이다. 이럴 때 내 삶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한 뒤에 유능하고 믿을만한 전문가를 찾아가는 게 최선이라는 (유일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런데 이것이 대체 왜 문제란 말인가.

 

<전문가들의 사회>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전문가’ 집단(혹은 계급)이 지닌 독특한 지위와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저자들은 각각 전문가 일반, 의료, 돌봄을 비롯한 서비스 분야, 법률, 파편화되는 숙련 노동과 그 분화된 결과로서 나타나는 전문가 분야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들은 “의사, 변호사, 직업정치가를 비롯한 전문가 엘리트들은 어떻게 권력을 독점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왔는가?” 그리고 “그들이 제공해온 (전문) ‘서비스’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유효한 설명을 제시한다. 필요에 따라 전문가를 찾고 전문가의 진단과 해법에 따르는, 일상적 삶의 양식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삶에서 처하는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적절한 진단과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들이 복잡해지고 분화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필수적이고 유용한 역할을 담당해온 것은 사실이다. 아픈 사람에게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은 당신이 지닌 가능성과 주체성을 상실하고, 당신을 결국 노예로 만들거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비인도적이며 부조리하다. 누구도 전문가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도 비판할 지점은 존재한다. 전문가들이 우리의 필요를 ‘창조’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의사나 법률가, 세무사 등 전문가 집단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 혹은 삶의 양식에 대해 그것이 ‘병’이라거나, ‘위법’의 소지가 있다거나, ‘절세의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진단할 수 있는 특권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이것을 안전하게 치료하고/소송에서 이기고/복잡한 세무를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 혹은 손해를 초래할 것이라 냉정하게 ‘위협’한다. 이것은 그들의 전문가적 지식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원한다면 사실상 모든 것을 ‘문제’와 ‘결핍’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당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우리는 당신이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 알고 있다. 당신은 문제나 해결책을 이해할 수 없다. 오직 우리만이 어떠한 해결책으로 당신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다.” (p.120-121)

 

시민의 이해와 비판을 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는 전문가들의 독점적인 진단은 그 자체로 필요를 만들어내고, 이는 곧 전문가들이 자신의 권위와 특권, 부를 재생산하는 기반이 된다. 자본과 제도의 필요 때문에 독점적으로 공인된 지식과 지위는 타인의 ‘결핍’과 ‘문제’를 진단하고 규정할 수 있는 특권이고, 그러한 특권은 자연스럽게 결핍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를 가져다준다.

 

나아가 이러한 전문가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한 개인이 삶에 대한 주체성을 상실할 여지도 커지며, 인간을 후천적인 ‘무능력자’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현대 사회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 냈고, 이는 그만큼의 새로운 전문가 집단이 생기는 당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은 전보다 더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되는 비중이 커질 것이다. 이는 개별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살아내는’ 범위가 왜소해지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과 역량을 상실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전문가의 지배’가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의심과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하며,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만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최적의 방법이라는 인상을 주며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걸음을 하나씩 뗄 때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해진다. 캠핑카 수리 전문가, 피트니스 전문가, 개사료 추천 전문가, 심지어 정신이완 전문가까지 말이다. 산업사회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궁극의 전문가주의(ultimate professionalism)이다. 즉 우리의 ‘필요’를 교묘하게 부추길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 결정을 내리고 그런 무기들을 구비한 전문가 군대 말이다.” (p.170~171)

 

이렇게 스스로 운영 가능한 영역이 왜소해진 삶에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 직장에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고, 시장에서 소비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결코 ‘교환 가치’ 이상의 임금을 우리에게 주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번 돈의 상당수는 다시 소비를 통해 전문가와 기업들에 돌아간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일한 대가로 받는 보상이 사실상 ‘먹고 사는’ 것 이외에 없는 삶을 우리는 노예의 삶이라 부르지 않던가.

 

이 책은 결코 현실에서 실체로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전문가 개인 혹은 집단을 ‘악’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특성,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전문가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한 세상에서 전문가 아닌 이들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한 어떤 구체적 강령이나 해법이 존재할까. 이 책이 언급하는 것처럼 “시민의 역량을 지원하고 시민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전문 영역을 이해 가능한 직무로 통역해주는 전문 직업인”의 등장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기대 가능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이 당장은 내부적으로 “현대판 이단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거스르기 어려워 보이는 힘을 거부한 이단자들이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의 물길을 바꿔온 사례 또한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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