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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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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충청리뷰에 난 기자로 좀 오래 된 내용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 올려봅니다.


사회단체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박창재·송재봉·김미경·우은정·이두영 처장이 말하는 ‘우리들의 삶’
“너무 바쁘고 휴식없지만 보람있다”, 동료 활동가 그만둘 때는 ‘절망적'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개방되고 증평이 ‘군’으로 독립한데에는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힘이 컸다. 이들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충북의 현안을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고, 선거 후 이것이 실현되도록 ‘압력’을 가했다. 도내 시민사회단체는 쓰레기부터 통일문제까지 다양한 현안에 관여하고 있다. 지방자칟지역경제·노동·환경·여성·문화·인권 등 이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권력을 감시하고 지방정부의 횡포를 견제하며, 대다수 도민들의 삶이 윤택해지도록 하기 위해 ‘24시간 근무’를 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으로 사는가. ‘충청리뷰’는 창간 10주년 기념특집으로 몇 단체의 사무처장·사무국장들과 부장들을 인터뷰했다.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사건이 터졌을 때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 실무자들은 무척 바빴다. 이들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그 때 그 때 적절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검찰개혁 토론회를 열었으며, 각종 방송에 출연해야 했다. 충북지역은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한 곳으로 꼽힌다. 충북도 전체로 볼 때 NGO 단체들이 대부분 청주에 몰려 있지만, 갖가지 분야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도내 시민운동은 48년 청주YMCA에 이어 65년 청주YWCA가 창립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89년 충북시민회(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가 탄생을 알렸고 나머지 단체들은 대부분 90년대 이후 등장했다. YMCA와 YWCA를 빼고는 그 역사가 대체로 10년 안팎이다.

 

사회단체 실무자들은 스스로를 ‘24시간 풀타임 근로자’라고 부른다. 그 만큼 일이 많고, 일과가 끝났다고 무장해제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단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무처장이나 사무국장들은 주로 초창기 멤버들이 맡고 있고 그 밑에 부장들이 각 부를 책임지고 있는 구조로 돼있다.

 

대부분 운동권 출신
청주환경운동연합의 박창재 사무국장(33)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처장(36), 청주YWCA 김미경 사회문제부장(36), 충북여성민우회 우은정 문화교육부장(33), 청주경실련 이두영 사무처장(38)은 창립멤버들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30대 실무자들로 현재 조직내에서나 밖에서나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해내고 있다. 그럼 이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5명의 실무자들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거나,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졸업하면서 진보적인 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는 것. 박창재 국장은 “노동현장과 농촌으로 가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평소 환경 관련 책을 많이 보았다. 충북대 사회대 학생회장 시절, 환경관련 행사도 여러 번 열었다. 생태주의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야할 길은 바로 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전공은 ‘엉뚱하게도’ 정치외교학이다.

 

당시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선배인 염형철(중앙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씨가 환경단체를 만든다는 소리를 듣고 의기투합, 둘은 95년 ‘푸른청주모임’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후 청주환경운동연합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 때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는 했으나 청주지역은 개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는 박국장은 사회단체 중에서는 환경연합이 후발주자라서 참여인력풀이 적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충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김미경 부장은 충북기독청년협의회 총무, 충북민족민주운동연합 간사를 거쳐 92년 청주YWCA에 들어갔다. 학창시절부터 기독교운동단체에서 활동한 김부장은 당시 어머니가 YWCA 이사로 활동, 자연스레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비자상담업무를 맡은 그는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연대하여 조직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충북협의회 활동으로 지역사회와 대면하게 된다.

 

NGO단체와 자연스레 연결
그런가하면 송재봉 처장은 93년 충북시민회 간사로 출발했다. 후에 이 단체는 청주시민회를 거쳐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로 이름을 변경했다. 청주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송처장은 자주대오와 청주대 교지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다. 송처장 말이다. “직장 다닐 생각도 없었지만,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받아주는 데도 없었다. 그러던 중 시민회를 알게 돼 간사로 일을 시작했다”

 

역시 학생운동권 출신인 우은정 부장은 충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95년 충북여성민우회와 인연을 맺었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한 우부장은 “대학시절부터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후 바로 빈민어린이들을 위한 하늘공부방 간사로 일을 했는데 이 곳이 문을 닫게 됐다. 그러면서 여성민우회에 들어가 간사로 시작, 홍보부장 사무국장을 거쳐 오늘까지 왔다”고 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야금’ 근로자로 일을 하던 이두영 처장은 94년 청주경실련 자원봉사자로 시작했다. ‘한국야금’ 노조측 교육선전부장이었던 그는 단협 도중 해직되면서 청주경실련과 손을 잡는다.

 

이들은 모두 시민운동가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김부장은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주변사람들이 믿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고 우부장은 “여성운동만큼 즐겁고 신나는 일은 없다. 목표지향적이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품어안고 가면서 자매애를 느낄 수 있어 좋다”고 적극적으로 말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매달리던 일이 타결됐을 때 가장 기쁠 것 같으나, 송처장은 단체 취지에 공감하고 회원이 ‘제 발로’ 들어올 때라고 답했다. 현안이 해결되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고,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2008년 11월 25일 있었던 통합관련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

 

 

“너무 바빠…쉬고 싶다”
반면 힘든 것은 가족들도 변변히 못 챙기고 재충전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뛰어다녀야 할 때라는 게 이처장 말이다. 이들 실무자들은 대부분 일이 많고, 쉬고 싶다고 했다. 출근시간은 정확하나 퇴근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데다 몇 년 동안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지역현안, 선거 등 대외적인 일에 좇아다니다 보니 심신의 피로감이 누적돼 미래를 위해서도 자기점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처장은 내년 7월 1년 과정으로 미국 미시건주립대 국제전문가과정에 들어갈 예정이고, 우부장은 1년 동안 무조건 쉴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외에는 이런 여유를 누릴 짬조차 없다.

 

그리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활동가가 빠져나갈 때는 거의 ‘절망’이라고 표현했다. 더욱이 그 이유가 ‘먹고 살기 위해’ 라는 명쾌하고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일 때 힘이 빠져나간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이런 문제는 NGO단체들이 겪는 중요한 고민 중 한가지다. 사회단체들의 처우가 일반 직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 이직률이 높고, 실무자를 자원봉사자 정도로 생각하는 풍토가 가시지 않아 ‘한참 써먹을 만한’ 활동가들이 하루 아침에 그만두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졸업 후 자연스레 사회단체 실무자로 들어왔는데 90년대 후반부터 이런 경향이 대폭 줄어 신입 활동가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송처장은 “최소 3년 걸려야 웬만한 활동가 한 명 길러내는 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이 일을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흔들린다”며 “지난해 3년차 활동가가 일시에 3명이나 빠져나가 정신이 없었다”고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했다. 박국장은 “4대 보험과 상여금, 호봉제가 정착되고 4년전부터는 단체가 재정자립을 이뤄 부채도 없다. 사람 충원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다만 활동가 급여를 최소한 9급 공무원 수준으로 할 필요는 있다. 과거보다 처우가 많이 개선됐으나 최저 생계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김부장은 힘든 점에 대해 보수세력들이 무작정 NGO 단체들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색다른 대답을 했다.

 

 

“NGO 활동가는 직업도 아닌가?”
또 NGO 활동가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점에 대해 우부장은 개별 단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김부장은 개인적으로는 사회단체 활동가로 평생을 살겠다는 각오가 전제돼야 하고, 조직내에서는 실무자들을 전문직업인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처장도 자신은 직업으로 생각하고 일을 하는데 주변에서 ‘언제 그만둘거냐’고 할 때는 속상하다고 털어 놓았다.

 

이들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또 다른 불만은 회의가 많다보니 운동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현장에 나가 회원과 지역주민을 만나 일을 진행해야 하는데 공식적인 회의 때문에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 지방분권국민운동 충북사무국·신행정수도건설추진충북범도민협의회 공동사무국을 맡고 있는 청주경실련 이두영 처장은 관련 단체에 회의를 소집하고, 지방분권국민운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전국 회의에 불려다녀야 하는 등 ‘회의’로 보내는 시간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박국장도 “하루 일과가 회의 1/3, 컴퓨터 작업 1/3, 사람 만나는 일 1/3로 짜여진다”고 말했다. 각종 토론회나 공청회, 방송 등에 출연하고 글을 기고하는 것도 이들의 몫.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나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매력도 많다. 선거 때와 특별한 사안이 발생하면 종종 ‘새벽 별’을 보며 귀가하지만 한 번 발을 담그면 헤어나지 못하는 분야가 이 쪽이라고 실무자들은 입을 모은다. 박국장은 문장대용화온천개발저지운동, 생수반대 지하수보존운동, 무심천하상구조물증설 저지운동 등이 그동안 청주환경운동연합에서 해온 의미있는 일이라며 ‘환경운동=대안운동’이며 분명한 철학이 있는 운동이라고 역설했다.

 

송처장은 직지찾기운동, 조례제정운동, 판공비공개운동, 작은권리찾기운동 등을 성과로 꼽았고 이처장은 수도권규제완화운동이 지방분권국민운동으로 전국적 이슈화돼 지방대·지방언론 살리기까지 이어진 점을 특히 기억에 남을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부장은 견고하던 호주제가 폐지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점, 김부장은 최 모 전 주차관리공단이사장 성희롱 사건을 확실하게 매듭지은 것등을 성과로 꼽았다.

 

앞으로의 과제라면 상근자 중심이 아닌 회원 중심 조직으로 단체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 상근자들의 역량을 질적으로 높이고, 지역사회 개혁에 좀더 매진해야 한다는 것,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개발 이들을 상근활동가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특히 우부장은 “NGO 활동가들은 빈민층에 속하는데 결국 빈민층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 여유있는 계층은 십일조 떼듯이 경제적인 지원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장도 “시민들이 시민단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밖에서 비판하지 말고 안에 들어와 활동해보고 말하라”며 적극적인 활동을 요구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사회단체는 ‘재야’로 분류돼 시민들이 회원으로 이름 올리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지금은 NGO 단체들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됐다. 이들은 오늘도 ‘눈에 불을 켜고’ 권력과 지방정부, 토착세력들의 비리를 감시한다. 충북을 포함한 대한민국이 살기좋은 곳이 된다면 이들의 공(功)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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