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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자&GO] "평생 시민운동가로 살래요"ㅣ이선영 상세정보
[함께가자&GO] "평생 시민운동가로 살래요"ㅣ이선영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7/18
첨부 첨부파일아이콘 함께가자NGO(충북참여연대 이선영사무처장).pdf
조회 1378

 

 1998년, 결국 청주시민회 간사로 시민운동에 발을 들였다. 청주시민회는 진보와 보수라는 스펙트럼을 떠나 양심적인 지역의 원로들이 대거 참여한 조직이었다.

 

(중략)

 

 청주시민회는 1995년 민선1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맞아 가장 낮은 단계의 유권자 참여운동인 공명선거운동을 주도한다. 이 공선협 운동은 16대 총선이 실시된 2000년에 이른바 ‘바꿔 열풍’을 몰고 온 낙천·낙선운동으로 승화된다. 청주시민회는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2001년 1월 정기총회에서 현재의 이름인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로 명칭을 바꾸고 정치개혁과 주민참여운동을 전면화하게 된다.

 

(중략)

 

 이선영 사무처장이 시민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시점은 청주시민회가 이처럼 낮은 단계의 주민참여운동을 통해 참여연대로 진화하는 과정이었다.

 “기자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시민운동가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청주시민회 간사가 되어 처음 맡은 일이 용두사지 철당간 보존운동과 직지 찾기 운동이었어요. 철당간은 청주를 대표하는 국보인데 상업시설에 포위돼 위상도 미미했고, 훼손 우려가 컸죠. 국보광장을 만들자는 주장을 펼쳤고, 당간문화제도 열었습니다. 직지 찾기 운동은 민간에서 시작해 관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 경우죠. 현상만 보면 직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직지를 널리 알리고 문화자산이라는 가치를 각인시키는 성과를 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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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6대 총선 때 자치단체 판공비 공개 청구 소송을 내서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결국 공개 결정을 받아냈는데 자치단체에서는 열람만 허용했어요. 대학생들을 조직해서 열람한 내용을 모두 필사해야했죠. 그때 대학생 필사단원으로 참여했다가 참여연대에 남은 사람이 최진아 시민자치국장입니다. 좋은 사업은 사람도 찾고 의식도 커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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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운동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부문별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단체가 분화됐고 전문성도 강화됐다는 것이다. 이 처장은 각각의 운동에 집중할 수도 있고 대안 제시능력도 향상됐다고 평가한다.

 참여연대의 전문영역은 행정과 의정에 대한 감시와 비판, 그리고 대안 제시다. 참여연대는 시민의 권력을 창출하고 정치와 행정에 개입하는 등 직접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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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장의 희망사항은 정년까지 시민운동가로 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처장은 자신의 역할 모델이 신영희 충북시민재단 (전) 이사장이라고 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면 누군가의 꿈이 된다고 했던가. 여성 활동가로서 자신의 첫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연대에서 사무처장의 자리에 오른 이 처장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또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눈 덮인 광야를 갈 때 발자국 하나 어지럽히지 말라'는 서산대사의 선시 한 구절의 무거움을 이 처장도 느끼고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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