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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읽는다] 그냥 먹고만 산다고 사는 게 아니라면 -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2014)를 읽고 상세정보
[하릴없이 읽는다] 그냥 먹고만 산다고 사는 게 아니라면 -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2014)를 읽고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1/26
첨부 조회 3510

그냥 먹고만 산다고 사는 게 아니라면

-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2014)를 읽고


/ 충북NGO센터 김동우 간사

*서지 사항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어크로스, 2014

 

* 본 서평은 필자의 블로그 '하릴없이 읽는다'에 게시한 원고를 일부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하루를 무엇으로(어떤 일들로) 채울지’와 같은 질문이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나름의 기준과 사정에 따라 조직한다. 하루하루가 쌓여 일상들을, 삶을 이룬다는 점에서 하루를 어떤 ‘일들’로 채울 것인지는 자연스럽게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 같은 물음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일들’ 중에서도 노동은 특수한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일 = 노동> 이라는 등식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통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4시간을 구성하는 덩이리중에 빠지지 않고 ‘(노동으로서의) 일’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 책은 “아버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일’에 관한 이야기”다. ‘내리막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 세대에게 변화하는(해야 하는) 일과 노동, 직업,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과 상상을 제시한다. ‘일들’이라고 표현했듯이 일과 노동은 구분하는 데에서 논의는 시작된다. ‘일들’로 하루를 구성한다는 표현 속에서 그 ‘일들’은 다시 (노동으로서) 일과 노동이 아닌것(여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휴식으로 분류되곤 한다. 인간이 행하는 ‘일들’에는 노동과 여가, 휴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저자의 표현처럼 “일에는 노동이라는 말에 담기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 휴식 그 사이 어딘가에, 어느 말로도 포섭되지 않는 인간의 행위가 분명 존재한다.

 

내리막 세상에서는 부모 세대의 지위와 계급을 재생산하기 위해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그렇게 하더라도 확신할 수 없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보다 ‘멈춰 서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다. 이러한 내리막 세상에서 일에 대한 가치관은 전과 다를 수 밖에, 달라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노동과 휴식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 사이에 분명이 존재하는 ‘일’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플랫폼’에 대한 논의도 인상적이다. 개인의 노력이나 인식 전환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 현실에 존재하며 그에 대한 대안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나의 노동력 또한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되며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인간을 한없이 작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느슨하지만 분명한 연대를 향해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시장의 교환관계 바깥에서 작동하는 ‘플랫폼’ ‘아지트’, ‘공동체’에 발 담고 싶은 욕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도 사실이다.

 

“대체 불가능성은 능력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냐는 질적 차이에서 나온다. 그런 대체 불가능성이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 차이를 발견해주는 조직이, 즉 사람‘들’이 필요하다. (중략)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등가성을 따지지 않고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주는 일터에서 일해야 한다. 내 존재 자체를 일의 규정에 포함해주는 일터가 필요하다. 그런 일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없다면 우리 스스로 ‘무리’를 이루어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p.230-231)

 

노동과 휴식 사이 어딘가에 있으면서도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일-들은 각자에게 다르며,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고 그것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한 뒤, 슬기롭게 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적이기도 하지만 회피할 수 없다. 현실을 팍팍하지만 그렇다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 숨만 쉬고 사는 것을 택하기엔 주저스럽다. 아직 가지 못한 길이, 해보지 못한 시도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해 볼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생계를 유지하면 좋겠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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