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활동가 소개

홈으로 이동알림마당공익활동가 소개
[함께가자&GO] 이주민 노동자의 벗ㅣ안건수 상세정보
[함께가자&GO] 이주민 노동자의 벗ㅣ안건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7/19
첨부 첨부파일아이콘 함께가자NGO(이주민노동인권센터 안건수 소장).pdf
조회 1548

[함께가자&GO] 이주민 노동자의 벗ㅣ안건수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든지 참으로 배울 것이 많은 것을 느꼈어요. 거리에서, 시장에서, 들녘에서 만난 이들은 저마다의 가르침을 나눠 줬죠. 특히 함께 여행한 김 목사님은 지나온 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을 펼치는 데 큰 영향을 줬죠.”

(중략)

2003년 4월 9일 ‘충북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로 출근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센터에서 일하면서 처음엔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직장. 하지만 직장의 직원이라는 맘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 수십 나라의 사람을 만나는 일도 허다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서로 답답했다. 도와주고 싶은 사람도,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이도 하루 종일 서로를 맴돌기만 하기도 했다. 
 정말 부지런히 일했지만 늘 가난했다. 직장 생활을 했다면 능히 승진했을테고, 장사를 했으면 돈 좀 벌었을지도 모를 만큼 하루, 일주일, 한 달, 한해를 정신없이 보냈다.

 

(중략)

 

꿈을 갖고 시작한 충북외국인이주노동자지원센터는 우여곡절 끝에 진천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2004년 11월 16일 영어잘하는 간사 나금연과 중국인 이주여성 강옥 두 명이 1년 동안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해 용기를 냈다. ‘외국인노동자인권복지회’를 등록하고 12월 18일 창립총회를 했다. “가야할 길은 너무도 멀고, 이제 출발이지만 희망의 돛을 달았다. 그 돛을 보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가고자 한다.”

 

(중략)

“10년 뒤에 보자. 누가 이주민들이 아파할 때 함께하고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있는지….”라는 다짐을 했다. 정말 열심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주민들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다. 2008년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선정한 동범상을 받았다.

 

(중략)
 

 그는 지금까지 몇 명을 만나고 몇 차례나 상담을 했을까?. 자신도 잘 모른다. 만난 이를 또 만나기도 하고, 들은 얘기 또 듣고, 간 곳 또 가고…. 반복이 또 반복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글쎄요. 하루에 한 명, 한 건 정도는 족히 될테니 지금까지 한 3천 건 정도 상담했을까요.”

 직업 변호사나 세무사, 노무사로 일했으면 빌딩도 세웠겠다. 하지만 그는 그길로 들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이 말 들어주고, 억울한 이 한 풀어주고, 비 맞는 이에게 우산 받혀 함께 걸어주고, 기대 울고 싶은 이에게 가슴 내주며 빛 안 나게 살았다.

 

(중략)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지금 사무실은 아내 이름으로 돼 있는 낡은 아파트를 담보하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전세로 살고 있다. 사무실에서 돌 징검다리 개울 하나만 지나면 아파트가 있다.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돌다리를 건넌다.
 아내의 넉넉한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 소장은 이 일을 시작할 때 아내에게 “딱 일 년만 해볼게”라고 했다. 10년이 ‘훅’ 하고 지났으니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중략)

 

안 소장은 “이 일을 자식에게 권할 생각은 없지만 본인이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꼭 필요한 일이기에. 얼마 전 아내 학교에서 이 일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아내가 자랑스러워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가족에겐 늘 고맙고 미안하다. 이주민에게서 연락이 오면 가족은 늘 뒤로 밀렸다. 늘 늦게까지 사람 만나느라 귀가는 늦기 일쑤였다. 음식 만들기 좋아해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이 놓아 주질 않았다. 아빠보다 친구를 더 찾는 나이가 됐지만 늦은 밤 딸 진영에게서 데리러 오라는 말이 떨어지면 그는 거의 날아간다.


(중략)

 

 안 소장은 ‘온 세상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는 차이점은 오직 정도의 차이이지 종류의 차이가 아니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새기며 산다. 너와 내가 틀림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얘기다.
 그는 이주민과 더불어 우리 선주민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쓰고 싶다. 다양함이 존재하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 이주민들이 우리의 친구로, 이웃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회 말이다.

 

(중략)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고 이주여성은 다양한 삶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려면 사회·정부·종교단체·시민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차이를 인정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주민노동센터의 유쾌한 해산과 함께 실직을 꿈꾸는 그의 바람이다. 하지만 지난 10년이 그랬듯이 다가올 10년 뒤에도 평화의 길, 사람의 길을 걷고 있을 것 같다. 그의 사람 좋은 웃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이전글 [함께가자&GO] 인권은 경계를 가르지 않는다ㅣ조광복
다음글 [함께가자&GO] 소셜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년활동가ㅣ엄승용